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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of Vision Elim Church

말씀묵상지

요약된 말씀으로 은혜를 되새겨 보세요.

3월 20일 말씀묵상지

이재영
2022-03-19
조회수 468

제목: 나병의 진단과 정결 (레 13:9∼17)


레위기의 주제는 ‘성결’입니다. 레위기 13장과 14장은 성결치 못한 부정한 병으로서의 ‘나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13장은 나병의 ‘진단’에 대해서, 14장은 나병에 대한 ‘정결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장과 14장에 ‘나병’이란 말이 60번이나 나옵니다. 이 ‘나병’을 ‘개역 성경’에서는 ‘문둥병’이라고 번역했었는데, 이 말은 저주와 조롱, 멸시가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 완역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개역 개정판’ 성경에서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듣기에 거북한 말들을 많이 바꾸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장애인에 관련된 용어들’이었습니다.

예컨대 벙어리를 ‘말 못 하는 사람’으로, 귀머거리를 ‘말 못 듣는 사람’으로, 소경을 ‘맹인’으로, 곱사를 ‘등 굽은 사람’으로, 앉은뱅이를 ‘못 걷는 사람’으로, 난쟁이를 ‘키 못 자란 사람’으로, 병신을 ‘몸 불편한 사람’으로, 불구자를 ‘장애인’으로, 문둥이를 ‘나병환자’로 고쳤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바꾼 용어들조차 시대의 흐름이나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난 용어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용어들을 본다면 ‘말 못 하는 사람’은 ‘언어장애인’으로, ‘말 못 듣는 사람’은 ‘청각 장애인’으로, ‘맹인’은 ‘시각 장애인’으로, ‘등 굽은 사람’은 ‘척추 장애인’으로, ‘못 걷는 사람’은 ‘하반신 장애인’으로, ‘나병환자’는 ‘한센병 자’로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나병은 영적인 부정을 가리키는 ‘죄’를 상징합니다.

나병은 육체적인 정신적인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고통을 더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나병에 걸렸다고 판정받으면, 즉시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으로 가야만 했고, 또한 나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생긴 병이라는 선입견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영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나병은 단순한 ‘피부병’을 넘어 ‘영적인 부정과 죄’를 상징했습니다. ‘영적인 질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나병이 죄의 상징이었던 것은, 다음 세 가지 예로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에 보면 나병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즉각 발병되는 병이었습니다. 구스 여인과 결혼한 모세의 지도력에 대항하여 비판하다가, 즉시 나병에 걸리게 된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그 예입니다.(민 12:10) 또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가 거짓과 탐욕으로 나아만 장군에게 뇌물을 요구했다가 즉시 나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왕하 5:27)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만 허락하신 분향하는 일을, 왕이라고 자기가 직접 분향하려 했던 웃시야 왕도 이마에 즉각 나병이 발병됐습니다.(대하 26:19) 이런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나병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질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나병이 단순히 육체적 질병이었다면 의사가 관리해야 마땅했을 텐데, 나병은 철저히 제사장의 관리 아래 있었음은 영적 질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나병을 진단하고 확정해 선포하는 것은 제사장의 사명이었고, 병이 나은 이후 정결예식을 행하는 것도 제사장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병은 단순히 육체적 질병이 아니라, 영적인 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셋째, 나병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어떤 약을 써도 나병을 깨끗게 할 수 없었고, 노력한다고 해서 낫는 병도 아니었습니다. 나병이 깨끗해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만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죄 사함으로써만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나병을 영어로 ⇨ ‘Defilement’(부정, 오염, uncleanness)라 합니다.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정결하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병에는 ⇨ ‘치료하다’는 Cure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깨끗하게 하다’는 Cleanse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도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 “네가 깨끗함을 입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나병이 단순히 육체적인 질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씻어 주실 수 있는 영적인 부정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 나병에 대한 진단은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6:8 → “그가(보혜사 성령)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보혜사’는 제삼위 하나님이신 ‘성령 하나님’(Holy Spirit)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책망하신다는 말은 ‘야단치거나 혼을 낸다’는 의미보다, ‘마음 깊이 깨닫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깨닫게 하십니까? ⇨ 자신이 죄인 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의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롬 3:10~12 →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죄가 가져올 결과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을 믿으라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말해도 관심 없을 뿐 아니라, 교회에 나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신이 죄인이고,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롯의 사위들처럼 심판에 관한 말씀과 복음을 농담으로 여기며, 그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속에 성령이 계시지 않은 사람들은! 죄인이지만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역사하실 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어 “이대로 살다가 죽었다가는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죄 사함 받아, ‘용서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나병환자에게 나병에 걸렸다고 진단해 주는 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 각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죄를 깨닫게 해 주시는 역사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레위기 13장은 제사장이 환자를 나병환자로 선언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조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조건은 이것입니다. 첫째,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딱지가 앉거나 색점이 생겼는데, 그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면 나병입니다.(레 13:3) 둘째, 피부에 흰점이 돋고, 털이 하얘졌으면 나병입니다.(레 13:10∼11a) 셋째, 피부에 생살이 보이면 나병으로 진단하라고 하셨습니다.(레 13:14∼15)


레위기 13장에는 나병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취해야 할 조치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 13:45~46 →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나병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 ① 먼저, 옷을 찢어야 합니다. 옷을 찢는 것은 “나에게는 천국에 들어갈 의(義)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② 그리고, 머리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은 묶었던 머리를 푸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여름에 태양 볕이 내리쬐고,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모자 같은 것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③ 또, 윗입술을 가리고 다녀야 하고, 진 밖에서 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오히려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이렇게 외치고 다녀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과도 멀리 떨어져서 진 밖으로 홀로 나가야 합니다. 모르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여기 부정한 사람이 있다. 부정한 사람이 있다.’ 소리쳐야 합니다. 이렇게 홀로 진 밖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영문 밖에서부터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원은 누가 대신 받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믿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믿는다고 자식이 저절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각자가, 일대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그분을 만나야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 바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저주받은 나병환자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가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 참된 성도가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성령이 깨닫게 하심으로, 상한 심령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 피로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과 교통케 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령 체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령의 참된 역사를 체험하여, 온전하고 정결한 심령으로 거듭나, 천국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어떻게 고치고 새롭게 하여야 할지 나눠봅시다.


2.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그냥 내어버려 두는 심판’입니다. 나병의 특징은 ‘무감각’입니다.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아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사명에 대해서 나눠봅시다.


3. 회개 없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후회와 회개의 차이에 대해서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