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자로서의 마음가짐! (마 20:20∼28)
우리는 지금 인류를 위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그 뒤를 따르는 ‘사순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그 ‘제자도’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세속적인 영광을 내려놓을 마음을 가져야!
130여 년 전인 개화기에,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었고, 처음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두 가지 동기’ 있었습니다. 하나는 ① 개화를 통한 ‘사회변혁’과 ‘자기발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② 그저 순수하게 예수 믿고 구원받기 위한 ‘복음적 동기’였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사람들의 예수 믿는 동기가 달라졌습니다. 바로 ‘축복의 동기’입니다. 여기서부터 복음이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예수 잘 믿어도 세상적인 축복은 기대하지 말아라! 이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를 믿어 복 받고, 건강하기 위해서만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병이 고쳐지지 않고, 부자 되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믿음을 버릴 수 있고 예수를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가 메시아다. 이분을 통해서 우리가 로마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예수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면서, 이런 기대는 더욱더 커졌을 것입니다. 와우! 이런 기적을 행하는 분이시라면, 우리의 소원도 만족시켜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세 번째 ‘수난고지’를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거듭 당신은 고난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로서는 참 당혹스러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제자 야고보·요한 형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을 하면서 이렇게 청탁합니다. 마 20:21 →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이 어머니도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게 되면, 틀림없이 정권을 잡고 왕의 자리에 오르시게 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두 아들을 서열 1위, 2위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치맛바람을 바라보는 다른 열 제자는 그 두 형제에 대해서 분히 여깁니다. 마 20:24 →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한마디로 너희들이 좌의정 우의정 다 해 먹으면 우린 뭐 하라는 거냐? 이런 것이죠! 이것은 분명히 예수를 따르는 동기가 변질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예수 믿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나 역시 제자들과 다를 바 없는 ‘세속적 동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런 제자들의 요청 앞에서, 오히려 세속적인 영광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6b → “너희 가운데서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단·마귀는 성도들이 교회와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달콤한 목소리로 십자가를 부인하고 헛된 영광을 구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6:24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왜냐하면 헛된 영광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절대로 십자가를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헛된 영광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 20:27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의 이 말씀을 따라,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섬김의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마 20: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걸어야 할 길은! 결코 ‘지배의 길’이 아니라 ‘섬김의 길’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자가 되었어도,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지배의 욕심’을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배의 욕구’는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는 가장 강렬한 욕구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위협하는 밑바탕에는, 언제나 이런 권력 욕구, 지배 욕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의 갈등! 그러니까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등 모든 갈등 속에는 “누가 지배자냐? 누가 다스리느냐?” 하는 주도권 다툼이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갈등, 심지어 교회 생활 속에서도 이런 갈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별히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의 역기능적인 요소인, 관계에서 계급화·서열화하려는 의식과 + 타락한 인간의 죄성이 겹쳐져 서 우리 사회는 좀 더 수직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아예 지위나 서열을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공동체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위와 계급, 서열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지위와 계급, 서열은 ‘섬김의 도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만은, 계급의식을 극복하고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크리스천 리더십’과 vs ‘세속적인 리더십’의 본질적인 차별성이 오늘 본문에 날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세속적인 리더십의 특징’입니다. 마 20:25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여기 ‘세속적 리더십의 특징’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주관한다, 권세를 부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절에 보시면 ‘크리스천 리더십의 차별성’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20:26∼27 →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네! 주님의 제자라면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철저하게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제자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섬길 마음을 가지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마음을 갖길 요청하십니다.
사람에게는 생일이 둘이 있다고 합니다. ① 첫째 생일은! “우리의 몸, 육체가 태어난 날”이고 ② 둘째 생일은!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알게 된 날”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육체의 생일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섬기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섬길 마음을 품는 것!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요청되는 마음인 것을 믿고, 그래! 내가 주님의 제자로서 ‘섬김의 삶을 실천하리라’는 마음을 품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주님으로 인해 고난이 온다면, 기꺼이 받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마지막 마음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고난’이라도 기꺼이 받겠다는 각오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섬김은 고난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난만 당하다 그냥 끝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 후에 받을 영광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23절 후반부를 보겠습니다. 마 20:23b →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너희들이 고난도 감수하고, 최선을 다해 섬기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날에 ‘상급과 영광’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신앙 선배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에너지는, 바로 고난 저편에 예비하신 ‘영광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지금 당장 그 영광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었습니다. 눈물과 희생, 섬김, 내 동기의 순수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축복하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고난 저편의 영광을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롬 8:18 →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고, 구원이시라고 확실하게 믿는다면, 아직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여러분의 믿음을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그런 신앙고백이나 전도 때문에 받을 수도 있는 수모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핍박받을 각오를 하십시오. 쉽게 타협하고,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 그 누구도 감동할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한 사람,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 하리라고 마음먹고 사는 사람들을 보고 감동하고, 그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런 삶만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메시지는 오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28절입니다. 마 20: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들이 가는 길과는 달리! 살아가는 가치가 달라야 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불신자는 부귀영화와 향락과 땅에서의 만족을 위해 살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천국에서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 그 정신! 그 마음! 가지고 살아,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높여주시고 영광되게 하시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눔과 묵상
1. 우리에게도 주님을 따르는 동기가 변질됐거나 타락한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나눠봅시다.
2. 섬김의 삶으로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된, 이 시대의 주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나눠봅시다.
3. 신앙 선배들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바로 고난 저편에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 이었습니다. 부활신앙이 주는 힘에 대해서 나눠봅시다.
제목: 제자로서의 마음가짐! (마 20:20∼28)
우리는 지금 인류를 위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그 뒤를 따르는 ‘사순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그 ‘제자도’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세속적인 영광을 내려놓을 마음을 가져야!
130여 년 전인 개화기에,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었고, 처음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두 가지 동기’ 있었습니다. 하나는 ① 개화를 통한 ‘사회변혁’과 ‘자기발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② 그저 순수하게 예수 믿고 구원받기 위한 ‘복음적 동기’였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사람들의 예수 믿는 동기가 달라졌습니다. 바로 ‘축복의 동기’입니다. 여기서부터 복음이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예수 잘 믿어도 세상적인 축복은 기대하지 말아라! 이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를 믿어 복 받고, 건강하기 위해서만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병이 고쳐지지 않고, 부자 되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믿음을 버릴 수 있고 예수를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가 메시아다. 이분을 통해서 우리가 로마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예수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면서, 이런 기대는 더욱더 커졌을 것입니다. 와우! 이런 기적을 행하는 분이시라면, 우리의 소원도 만족시켜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세 번째 ‘수난고지’를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거듭 당신은 고난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로서는 참 당혹스러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제자 야고보·요한 형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을 하면서 이렇게 청탁합니다. 마 20:21 →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이 어머니도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게 되면, 틀림없이 정권을 잡고 왕의 자리에 오르시게 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두 아들을 서열 1위, 2위의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치맛바람을 바라보는 다른 열 제자는 그 두 형제에 대해서 분히 여깁니다. 마 20:24 →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한마디로 너희들이 좌의정 우의정 다 해 먹으면 우린 뭐 하라는 거냐? 이런 것이죠! 이것은 분명히 예수를 따르는 동기가 변질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예수 믿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나 역시 제자들과 다를 바 없는 ‘세속적 동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런 제자들의 요청 앞에서, 오히려 세속적인 영광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6b → “너희 가운데서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단·마귀는 성도들이 교회와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달콤한 목소리로 십자가를 부인하고 헛된 영광을 구하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6:24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왜냐하면 헛된 영광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절대로 십자가를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헛된 영광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 20:27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의 이 말씀을 따라,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섬김의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마 20: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걸어야 할 길은! 결코 ‘지배의 길’이 아니라 ‘섬김의 길’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자가 되었어도,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지배의 욕심’을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배의 욕구’는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 뿌리박고 있는 가장 강렬한 욕구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위협하는 밑바탕에는, 언제나 이런 권력 욕구, 지배 욕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의 갈등! 그러니까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등 모든 갈등 속에는 “누가 지배자냐? 누가 다스리느냐?” 하는 주도권 다툼이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갈등, 심지어 교회 생활 속에서도 이런 갈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별히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의 역기능적인 요소인, 관계에서 계급화·서열화하려는 의식과 + 타락한 인간의 죄성이 겹쳐져 서 우리 사회는 좀 더 수직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아예 지위나 서열을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공동체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위와 계급, 서열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지위와 계급, 서열은 ‘섬김의 도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만은, 계급의식을 극복하고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크리스천 리더십’과 vs ‘세속적인 리더십’의 본질적인 차별성이 오늘 본문에 날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세속적인 리더십의 특징’입니다. 마 20:25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여기 ‘세속적 리더십의 특징’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주관한다, 권세를 부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절에 보시면 ‘크리스천 리더십의 차별성’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20:26∼27 →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네! 주님의 제자라면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철저하게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제자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섬길 마음을 가지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마음을 갖길 요청하십니다.
사람에게는 생일이 둘이 있다고 합니다. ① 첫째 생일은! “우리의 몸, 육체가 태어난 날”이고 ② 둘째 생일은!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인생의 목적을 깨닫고 알게 된 날”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육체의 생일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섬기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섬길 마음을 품는 것!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요청되는 마음인 것을 믿고, 그래! 내가 주님의 제자로서 ‘섬김의 삶을 실천하리라’는 마음을 품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주님으로 인해 고난이 온다면, 기꺼이 받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마지막 마음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고난’이라도 기꺼이 받겠다는 각오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섬김은 고난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난만 당하다 그냥 끝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 후에 받을 영광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23절 후반부를 보겠습니다. 마 20:23b →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너희들이 고난도 감수하고, 최선을 다해 섬기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날에 ‘상급과 영광’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신앙 선배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들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에너지는, 바로 고난 저편에 예비하신 ‘영광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지금 당장 그 영광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었습니다. 눈물과 희생, 섬김, 내 동기의 순수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축복하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고난 저편의 영광을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롬 8:18 →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고, 구원이시라고 확실하게 믿는다면, 아직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여러분의 믿음을 드러내시길 바랍니다.
그런 신앙고백이나 전도 때문에 받을 수도 있는 수모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핍박받을 각오를 하십시오. 쉽게 타협하고, 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 그 누구도 감동할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한 사람,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 하리라고 마음먹고 사는 사람들을 보고 감동하고, 그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런 삶만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메시지는 오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28절입니다. 마 20: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들이 가는 길과는 달리! 살아가는 가치가 달라야 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불신자는 부귀영화와 향락과 땅에서의 만족을 위해 살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천국에서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길! 그 정신! 그 마음! 가지고 살아,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높여주시고 영광되게 하시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눔과 묵상
1. 우리에게도 주님을 따르는 동기가 변질됐거나 타락한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나눠봅시다.
2. 섬김의 삶으로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된, 이 시대의 주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나눠봅시다.
3. 신앙 선배들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바로 고난 저편에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 이었습니다. 부활신앙이 주는 힘에 대해서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