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말씀묵상지

이재영
2023-03-04

제목: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나의 고백! (마 16:13∼20)


시험이나 취업의 마지막 관문은 대개 ‘면접시험’일 때가 많습니다. 이 면접은 시험 당사자 대신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당사자 본인이 면접을 통과해야 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예수님 앞에서 이와 같은 ‘면접시험’을 치른 후에 비로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면접하십니다. 이 면접 역시! 예수님과 본인, 둘 외에는 어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리요 시간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천국 백성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얻을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과의 면접시험 ‘두 가지 질문의 내용은 무엇’이고, 우리가 ‘바르게 대답하고 고백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1. 첫 번째 질문인 ‘너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분명한 신앙고백’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하고만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고, 일부러 빌립보 가이샤라로 가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심으로써, 의미심장한 면담을 시작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대답은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던 온갖 ‘풍문’들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의도하신 진짜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면접시험의 첫 번째 질문’의 요지는 →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제자인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수제자인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 16:16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즉 예수님은 그 본성이 ‘하나님’이시며, 이 땅에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오신 분이라는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대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벽한 대답’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으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면접하고 계십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고 고백해야 할 사람은 오직 ‘나 자신’인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분명하고 확신 있게 고백함으로써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번째 질문인 ‘너는 나(예수님)를 어떻게 따를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죽기까지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시고, ‘이제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해졌구나!’ 생각하시고 당신의 ‘십자가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 16:21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그런데! 앞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바른 정답을 말했던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하면서 가로막습니다. 마 16:22 →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 16:23 →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방금 전에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를 보고 칭찬하셨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책망 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6:24∼25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당시 대중들에게는 잘못된 메시아관(觀) 즉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서서 ‘내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다!’ 하면서 앞장서기만 하면, 당장 그 사람을 따라 독립운동을 일으킬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하자, 그 말을 어디 가서 하지 말라고 엄하게 명하시면서, 진정한 그리스도란? 어떤 메시아인지를 확실히 밝혀 주셨습니다. 앞서 보았던 구절입니다. 마 16:21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즉 진짜 구세주는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그리스도라고 천명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이나 ‘죽음’이란!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하던 메시아 상(像)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들이야말로 진짜 구세주가 ‘반드시 당하고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고백할 때는, 반드시 예수님을 ‘고난받는 종’으로 오신 메시아로 영접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와 같은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만이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좇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음으로! 뭔가 덕 볼 일만 계산하는 사람은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죽으실 그리스도’를 결코 영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직후에, 바로 이 ‘두 번째 면접 질문!’ → 곧 “너는 나를 어떻게 따르겠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신앙고백’의 진실성은! 오직 예수님을 섬기는 ‘충성’의 여부로써만 명백하고 정확하게 증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성도들 중에도 적지 않게 예수님을 오로지 ‘정치적 구세주’나 ‘경제적 구세주’로만 모시고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를 믿으면! 그 예수님이 자기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해 줄 것이라는, 그 한 가지 기대를 가지고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죄 때문에 대신 ‘고난당하고 죽임당하는 메시아’란 아무 의미도 없고, 로마를 ‘정복하고 승리하는 구세주’에 대한 기대감만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못하고, 끝내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그저 고난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고난 후에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① 성육신하시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② 다시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승천하셨고 ③ 천군 천사들과 함께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메시아의 영광’은! 이 세상에서 누릴 벼락출세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 후에 받게 될, 더 큰 영광’이며, 현세로 제한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지속될 영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놀라운 영광에 함께 참여하려면! 오늘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만 한다고 제자들에게 촉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26절에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6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간단히 말해서 ‘무엇이 정말 더 중요한 것인지 한번 잘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물질이나 지위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면서 살지만, 자신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그야말로 ‘온 천하’를 다 주더라도 ‘자기 목숨’을 살리려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진심으로 믿고 소망하는 자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당연히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뿐 아니라, 그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계산인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십니다. → “너는 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각오가 되어 있느냐?” 여러분은 이 예수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실 것입니까? ▶ “주님! 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내 남은 인생이 아무 걱정 없고 행복할 것 같아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까? 아니면 ▶ “네! 주님. 내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라도 바쳐서 예수님만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바라기는 베드로와 제자들이 마가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고백했던 것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막 14:31 →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아멘. 이런 고백과 대답으로 ‘고난 뒤에 약속되어 있는 최고의 영광’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눔과 묵상


1.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당신은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2. “너는 나를 어떻게 따르겠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당신은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3. 의외로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 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