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좋은 땅이 되어 열매를 풍성히! (마 13:18~23)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의 상태를 아주 명확하게 분석해주셨습니다. 첫째는, 길가와 같은 굳은 마음이요. 둘째는, 돌짝 밭과 같이 깊이가 없는 마음이요. 셋째는, 가시덤불이 왕성한 잡초마음이요. 넷째는, 좋은 땅의 옥토 마음입니다.
오늘 비유를 잘 살펴보면, 문제는 ‘씨앗’에 있지 않고 ‘흙’에 있습니다. 즉 ‘밭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씨앗에도 문제가 없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에게도 문제가 없습니다. 오직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의 변수는 ‘땅’ ‘흙’ ‘밭’이 문제입니다.
① 먼저 ‘길가와 같은 밭’입니다. 이 밭의 문제는 흙이 너무 딱딱하고 굳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 고집스럽고 굳은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3:19 →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즉, 마음이 굳어 있고 완악해져 있기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심령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심어지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이 그 뿌려진 말씀! 씨앗을 다 빼앗아 가게 되고 열매 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땅은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마음 밭을 갈아엎을까요? 쟁기로 할까요? 아니면 삽으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렘 23:29입니다.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우리 심령을 쪼개고 수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밭, 혹은 내 가족의 마음 밭을 진단해 보고, 길바닥 같은 마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이! 자신에게, 가족에게, 강하게 임하도록 사모함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 고집스럽고 굳은 마음이 다 깨지고 부스러져서, 옥토로 변하게 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② 돌짝 밭, 흙이 얕은 밭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다 보면, 흙이 얕은 너럭바위 같은 곳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밭은, 두꺼운 석회암층 위에 흙이 얇게 덮여 있는 밭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므로, 가물 때 쉽게 타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본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 13:20∼21 →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네! 깊은 뿌리가 없는 신앙, 감정적인 신앙, 소위 냄비 신앙인을 말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는 감동을 받습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기쁨과 희열을 느낍니다. 소망을 갖고 좋아합니다. 굳게 다짐합니다. 결심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오래가질 못합니다. 잠깐뿐입니다. 너무 쉽게 요동하고 넘어집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설교가 일시적인 감동을 줄 뿐,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자마자 금방 쏟아버리고 맙니다. 열심을 품는 듯하다가 한순간에 침체에 빠집니다. 감정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반짝하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깊이 있는, 심성 깊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깊이와 두께가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심령에 객토(客土)와 성토(盛土)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사이며 시인인 최상호 시인의 ‘마음 밭의 객토 작업’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봄을 맞기 전에 내 갈라진 마음 밭에도, 새 흙을 좀 부어야겠다.
어린 시절, 농부인 아버지는 한 해의 농사를 끝낸 뒤
푸석해진 논밭에 자주 기름진 산자락 흙을 옮겨 덮으셨다.
잃어버린 땅심을 찾아야 한다고 하시며…
발길 안 닿은 새 흙을 퍼 넣으시던, 그때의 아버지처럼
나도 내 척박해진 영혼에 퇴비를 해야겠다.
한때는 제법 윤택했던 손,
처음에는 웬만큼 너그러웠던, 귀와 눈의 회복을 위해
새해에는 검붉은 산자락 흙과, 강변 고운 모래로
늙어버린 마음 밭에, 객토 작업을 해야겠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의 회복을 위해서, 마음 밭의 객토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남을 향한 너그러움을 심으려고 해도, 마음의 윤택함을 회복하고, 갈라지고 푸석해진 마음을 추스려 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에 객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객토(客土)란 무엇입니까? 객토란 산성화되었거나, 나빠진 토양 위에, 외부에서 새 흙을 가져다 부어서 땅의 힘을 상승시켜 주는 작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객토는 단순히 현재의 토지를 갈거나 쟁기질하는 것! 곧 기경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객토란 단어에 ‘손님 객(客)’자를 쓰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외부의 좋은 흙을 가져와서 더해줌으로써 땅의 지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럼 성토(盛土)는 무엇입니까?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기왕에 있는 땅 위에, 흙을 돋우어 쌓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마음 밭이 흙이 얇은 돌짝 밭과 같다면! 즉 말씀을 듣고 잠시 기쁘지만, 작은 유혹이 오면 금방 시들고 기쁨을 잃어버린다면, 그 돌짝 밭 위에 새 흙을 가져다가, 상당한 두께의 흙이 덮혀지도록 하는 ‘성토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새 흙이 무엇입니까? 외부의 양질의 흙! 그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성경을 깊이 읽는 것 보다, 다독(多讀) 즉 많이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많은 양의 성경을 읽다보면, 말씀의 두께가 생겨지면서, 쉽게 넘어지거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신앙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깊이가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 가시밭! 즉 잡초가 마음을 뒤덮고 있는 밭입니다. 가시밭은 곡식과 함께 가시! 즉 잡초가 같이 자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대로, 곡식보다는 잡초와 가시가 훨씬 빨리 자라고, 크게 자랍니다. 이런 잡초와 가시가 자라면서 ‘자양분’을 빼앗아 먹고, 또한 크게 자라 ‘그늘’을 만들어, 곡식을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곡식은 겉모양은 갖췄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서 예수님은 잡초와 가시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마 13:22 →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문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 할 때, 큰 장애물은 외부적인 ‘핍박’이나 ‘환란’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무서운 적! 방해꾼은, 내부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바로 ‘생활에 대한 염려’와, ‘세상의 향락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세상 염려를 자르고, 욕심을 죽이고, 잘못된 습관을 뽑아버리고, 정욕을 불살라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문제들! 즉 잡초에 휩싸인 인생이 되어서 그대로 살다간, 결국 쭉정이 신자가 되고, 추수 때에 불에 던져지는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④ 옥토 즉 좋은 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강조하기 위해서, 앞서 여러 가지 잘못된 밭의 상태를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옥토는 어떤 밭입니까? 좋은 땅입니다. 마 13:23 →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네! 옥토! 좋은 땅에 씨앗이 떨어지기만 하면, 아무리 못해도 30배요. 60배, 심지어 100배가 되도록 결실합니다.
그러면 이런 좋은 땅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네! 옥토는 본래부터 있었거나 저절로 만들어진 땅이 아닙니다. 모든 땅이 처음에는 불모지와 같은 험한 땅이었으나, 농부가 끊임없이 땀 흘리며 수고하여 개간하여 옥토가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의 마음도 처음부터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길가와 같이 완고하고 고집스런 닫힌 마음도 있고, 돌짝밭과 같이 작은 시련이나 핍박 앞에서도 쉽게 기운을 잃어버리는 얕은 마음도 있고, 가시밭과 같이 여러 가지 세상의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눠진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밭을 말씀으로 갈아엎고, 인내와 끈기로 믿음을 지켜나가며, 세상의 향락과 잘못된 습관들을 끊어버리고 뽑아버릴 때, 비로소 옥토로 변하여, 열매 맺기 좋은 땅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농부의 땀과 수고와 눈물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로 변하도록 참고, 수고하며, 눈물 뿌리며,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좋은 땅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좋은 땅’도 가만히 두면 금방 ‘쓸모없는 땅’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옥토와 같은 심령의 밭, 좋은 땅이 되어서,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자신의 신앙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영적 기운을 막는 것은 무엇이고, 과감히 끊어버리고 뽑아버 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좋은 땅’도 가만히 두면 금방 ‘쓸모없는 땅’이 됩니다. 좋은 땅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할 바를 나눠봅시다.
3. 자신의 영적 상태를 4가지 마음 밭에 비추어 살펴보고, 옥토! 좋은 밭이 될 결심과 계획을 나눠봅시다.
제목: 좋은 땅이 되어 열매를 풍성히! (마 13:18~23)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의 상태를 아주 명확하게 분석해주셨습니다. 첫째는, 길가와 같은 굳은 마음이요. 둘째는, 돌짝 밭과 같이 깊이가 없는 마음이요. 셋째는, 가시덤불이 왕성한 잡초마음이요. 넷째는, 좋은 땅의 옥토 마음입니다.
오늘 비유를 잘 살펴보면, 문제는 ‘씨앗’에 있지 않고 ‘흙’에 있습니다. 즉 ‘밭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씨앗에도 문제가 없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에게도 문제가 없습니다. 오직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의 변수는 ‘땅’ ‘흙’ ‘밭’이 문제입니다.
① 먼저 ‘길가와 같은 밭’입니다. 이 밭의 문제는 흙이 너무 딱딱하고 굳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 고집스럽고 굳은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3:19 →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즉, 마음이 굳어 있고 완악해져 있기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심령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심어지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이 그 뿌려진 말씀! 씨앗을 다 빼앗아 가게 되고 열매 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땅은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마음 밭을 갈아엎을까요? 쟁기로 할까요? 아니면 삽으로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렘 23:29입니다.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우리 심령을 쪼개고 수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밭, 혹은 내 가족의 마음 밭을 진단해 보고, 길바닥 같은 마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이! 자신에게, 가족에게, 강하게 임하도록 사모함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 고집스럽고 굳은 마음이 다 깨지고 부스러져서, 옥토로 변하게 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② 돌짝 밭, 흙이 얕은 밭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다 보면, 흙이 얕은 너럭바위 같은 곳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밭은, 두꺼운 석회암층 위에 흙이 얇게 덮여 있는 밭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므로, 가물 때 쉽게 타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본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 13:20∼21 →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네! 깊은 뿌리가 없는 신앙, 감정적인 신앙, 소위 냄비 신앙인을 말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는 감동을 받습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기쁨과 희열을 느낍니다. 소망을 갖고 좋아합니다. 굳게 다짐합니다. 결심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오래가질 못합니다. 잠깐뿐입니다. 너무 쉽게 요동하고 넘어집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설교가 일시적인 감동을 줄 뿐,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자마자 금방 쏟아버리고 맙니다. 열심을 품는 듯하다가 한순간에 침체에 빠집니다. 감정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반짝하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깊이 있는, 심성 깊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깊이와 두께가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심령에 객토(客土)와 성토(盛土)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사이며 시인인 최상호 시인의 ‘마음 밭의 객토 작업’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봄을 맞기 전에 내 갈라진 마음 밭에도, 새 흙을 좀 부어야겠다.
어린 시절, 농부인 아버지는 한 해의 농사를 끝낸 뒤
푸석해진 논밭에 자주 기름진 산자락 흙을 옮겨 덮으셨다.
잃어버린 땅심을 찾아야 한다고 하시며…
발길 안 닿은 새 흙을 퍼 넣으시던, 그때의 아버지처럼
나도 내 척박해진 영혼에 퇴비를 해야겠다.
한때는 제법 윤택했던 손,
처음에는 웬만큼 너그러웠던, 귀와 눈의 회복을 위해
새해에는 검붉은 산자락 흙과, 강변 고운 모래로
늙어버린 마음 밭에, 객토 작업을 해야겠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의 회복을 위해서, 마음 밭의 객토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남을 향한 너그러움을 심으려고 해도, 마음의 윤택함을 회복하고, 갈라지고 푸석해진 마음을 추스려 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에 객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객토(客土)란 무엇입니까? 객토란 산성화되었거나, 나빠진 토양 위에, 외부에서 새 흙을 가져다 부어서 땅의 힘을 상승시켜 주는 작업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객토는 단순히 현재의 토지를 갈거나 쟁기질하는 것! 곧 기경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객토란 단어에 ‘손님 객(客)’자를 쓰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외부의 좋은 흙을 가져와서 더해줌으로써 땅의 지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럼 성토(盛土)는 무엇입니까?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기왕에 있는 땅 위에, 흙을 돋우어 쌓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마음 밭이 흙이 얇은 돌짝 밭과 같다면! 즉 말씀을 듣고 잠시 기쁘지만, 작은 유혹이 오면 금방 시들고 기쁨을 잃어버린다면, 그 돌짝 밭 위에 새 흙을 가져다가, 상당한 두께의 흙이 덮혀지도록 하는 ‘성토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새 흙이 무엇입니까? 외부의 양질의 흙! 그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성경을 깊이 읽는 것 보다, 다독(多讀) 즉 많이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많은 양의 성경을 읽다보면, 말씀의 두께가 생겨지면서, 쉽게 넘어지거나 시험에 빠지지 않고, 신앙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의 깊이가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 가시밭! 즉 잡초가 마음을 뒤덮고 있는 밭입니다. 가시밭은 곡식과 함께 가시! 즉 잡초가 같이 자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대로, 곡식보다는 잡초와 가시가 훨씬 빨리 자라고, 크게 자랍니다. 이런 잡초와 가시가 자라면서 ‘자양분’을 빼앗아 먹고, 또한 크게 자라 ‘그늘’을 만들어, 곡식을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곡식은 겉모양은 갖췄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서 예수님은 잡초와 가시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마 13:22 →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문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 할 때, 큰 장애물은 외부적인 ‘핍박’이나 ‘환란’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무서운 적! 방해꾼은, 내부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바로 ‘생활에 대한 염려’와, ‘세상의 향락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우리들도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세상 염려를 자르고, 욕심을 죽이고, 잘못된 습관을 뽑아버리고, 정욕을 불살라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문제들! 즉 잡초에 휩싸인 인생이 되어서 그대로 살다간, 결국 쭉정이 신자가 되고, 추수 때에 불에 던져지는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④ 옥토 즉 좋은 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강조하기 위해서, 앞서 여러 가지 잘못된 밭의 상태를 소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옥토는 어떤 밭입니까? 좋은 땅입니다. 마 13:23 →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네! 옥토! 좋은 땅에 씨앗이 떨어지기만 하면, 아무리 못해도 30배요. 60배, 심지어 100배가 되도록 결실합니다.
그러면 이런 좋은 땅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네! 옥토는 본래부터 있었거나 저절로 만들어진 땅이 아닙니다. 모든 땅이 처음에는 불모지와 같은 험한 땅이었으나, 농부가 끊임없이 땀 흘리며 수고하여 개간하여 옥토가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의 마음도 처음부터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길가와 같이 완고하고 고집스런 닫힌 마음도 있고, 돌짝밭과 같이 작은 시련이나 핍박 앞에서도 쉽게 기운을 잃어버리는 얕은 마음도 있고, 가시밭과 같이 여러 가지 세상의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눠진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밭을 말씀으로 갈아엎고, 인내와 끈기로 믿음을 지켜나가며, 세상의 향락과 잘못된 습관들을 끊어버리고 뽑아버릴 때, 비로소 옥토로 변하여, 열매 맺기 좋은 땅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농부의 땀과 수고와 눈물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로 변하도록 참고, 수고하며, 눈물 뿌리며,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좋은 땅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좋은 땅’도 가만히 두면 금방 ‘쓸모없는 땅’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적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옥토와 같은 심령의 밭, 좋은 땅이 되어서,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자신의 신앙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도록, 영적 기운을 막는 것은 무엇이고, 과감히 끊어버리고 뽑아버 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좋은 땅’도 가만히 두면 금방 ‘쓸모없는 땅’이 됩니다. 좋은 땅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할 바를 나눠봅시다.
3. 자신의 영적 상태를 4가지 마음 밭에 비추어 살펴보고, 옥토! 좋은 밭이 될 결심과 계획을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