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죄 사함을 받아 치유까지! (마 9:1∼8)
사람이 마음에 죄를 품고서는 평안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심어두신 ‘양심’이 있어서, 자기의 죄에 대하여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제일 먼저 자기의 양심이 자기를 고소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양심 때문에 괴롭습니다. 마음에 심한 번민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괴로움이 심해질수록 그 사람은 정신과 기력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노래하기를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예수님은 인생의 속 깊은 문제까지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 심지어 혀 밑에 감추어진 죄까지 아시는 분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죄의 심각성’과 ‘주님의 은혜’를 깨달음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육체의 질병까지 치유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오늘 본문에는 온몸이 마비되어 혼자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한 ‘중풍 병자’가 나옵니다. 중풍(中風)은 잘 아시는 대로 ‘뇌졸중’(腦卒中)이라고도 하는 질병입니다.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에 혈액 공급이 안 되면서, 산소결핍으로 뇌세포가 죽으면서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어 넘어지거나, 전신 혹은 반신불수, 구안와사, 언어장애와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중풍 병자’는 ‘혈관 문제’로 전신마비가 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영적인 문제’로 인해 육체에 마비가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중풍 병은 순전히 ‘죄로 말미암아 생긴 것’입니까?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어떤 ‘질병’이나 ‘재난’을! ‘죄로 인한 형벌’로 간주하는 생각에 반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 역시 본인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경우 모두! 죄의 결과로 재난이나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중풍 병자를 향해서는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질병이 다 죄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풍 병자의 경우는 죄가 그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깊은 내면 속에 숨겨져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면서, 죄가 얼마나 사람을 심각하게 망가트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주 활동무대셨던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이곳에 치유를 바라는 한 중풍 병자를 네 명의 친구들이 들것에 싣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예수님이 앉아계신 방의 지붕을 뚫고 병자의 침상에 줄을 매서 달아 내립니다. 그러자 주님은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주님은 이전에도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는 했어도, 죄 사함에 관해 말씀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추론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중풍 병자는 과거에 어떤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죄를 범했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이 죄로 인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신음하다가, 마침내 그는 육체적인 질병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자신 속에 있는 죄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진정한 문제는 중풍 병의 치유가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은 이 사실을 꿰뚫어 보셨고, 질병 자체를 치료하시기에 앞서 그 질병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육체의 질병까지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숨겨진 죄의 문제를 보실 수 있는 예수님! 그리고, 문제를 보실 뿐만 아니라 그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이 죄 가운데 신음하고 있을 때, 오직 예수님만이 그 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중풍 병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문제로 양심이 괴롭고 심령이 평안치 못한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주저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애쓰지 마시고, 주님 앞에 나와 토설하십시오. “주님! 내가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고백하고 간구하면! 주님은 동일하게 “아무개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용서의 기쁨과 육체의 치유를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대신 죗값을 담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또한 이것을 전해야 합니다. 목사와 그리스도인이 전해야 하는 복음의 핵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지적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기관들의 문제를 반면교사 삼아!
그런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즉각적으로 서기관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마 9:3 →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마가복음에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막 2:7 →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는 이들의 생각은 사실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몰랐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세상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기에 서기관들의 마음에 걸림이 생겼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고, 세 기자가 동일하게 쓰고 있습니다. 주님은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비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놀라운 이적과 기사들을 폄하하면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성도가 목사에게 섭섭한 일이 있거나 뭔가 걸리는 것이 있으면, 그가 전하는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들으면서 ‘당신이나 잘하쇼!’ 이런 생각이 들고, 뭐 잘못된 것은 없나? 찾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은혜는커녕 자신의 심령만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손해 보는 것은 누구인가요? 바로 자신입니다. 객관적으로 전해지는 진리의 말씀에 아멘! 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그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인생을 지옥 구덩이에 던져 넣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쉽겠느냐?” 성도 여러분!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실은 둘 다 어렵습니다. 둘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죄 사함의 권세는! 인간에게 주어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병을 고치는 기적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통해서도 자주 일어났던 일입니다. 물론 제자들과 사도들이 일으킨 신유의 기적들도 자연인인 그들이 이뤄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둘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치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어려운 일이, 바로 죄 사함을 선언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서기관! 바로 너희들처럼 불신하는 자들에게, 내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공동 번역은 이 본문을 이렇게 좀 더 생생하게 번역했습니다. “이제 인자가(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어…”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한 생각으로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주님은 다시 분명한 말씀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마 9:6c →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러자 사지가 마비되어 꼼짝 못하던 중풍 병자가 벌떡 일어나서 누워왔던 들것을 메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실로 마음 속의 질병이었던 죄의 문제와, 육체의 질병이었던 중풍을 한꺼번에 치유 받아 다 건강해져서 돌아가는 축복된 인생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랜 세월 동안 죄책으로 인해 시달려 왔던 중풍 병자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각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치유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외적인 질병과 내적인 죄의 문제를 일시에 도말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언하신 주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신 주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죄로 인하여 마음의 병이나 혹은 육체의 질병을 앓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어떻게 해결될 수 있었는지? 나눠봅시다.
2. 주님의 용서의 선언에는 전제가 있고, 우리에게서 보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과 ‘고백’ 입니다. 이에 대해서 나눠봅시다.
3. 오늘날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또한 ‘죄’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나눠봅시다.
제목: 죄 사함을 받아 치유까지! (마 9:1∼8)
사람이 마음에 죄를 품고서는 평안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심어두신 ‘양심’이 있어서, 자기의 죄에 대하여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제일 먼저 자기의 양심이 자기를 고소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양심 때문에 괴롭습니다. 마음에 심한 번민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괴로움이 심해질수록 그 사람은 정신과 기력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노래하기를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예수님은 인생의 속 깊은 문제까지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악한 생각, 심지어 혀 밑에 감추어진 죄까지 아시는 분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죄의 심각성’과 ‘주님의 은혜’를 깨달음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육체의 질병까지 치유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오늘 본문에는 온몸이 마비되어 혼자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한 ‘중풍 병자’가 나옵니다. 중풍(中風)은 잘 아시는 대로 ‘뇌졸중’(腦卒中)이라고도 하는 질병입니다.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에 혈액 공급이 안 되면서, 산소결핍으로 뇌세포가 죽으면서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어 넘어지거나, 전신 혹은 반신불수, 구안와사, 언어장애와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중풍 병자’는 ‘혈관 문제’로 전신마비가 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영적인 문제’로 인해 육체에 마비가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중풍 병은 순전히 ‘죄로 말미암아 생긴 것’입니까?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어떤 ‘질병’이나 ‘재난’을! ‘죄로 인한 형벌’로 간주하는 생각에 반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 역시 본인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경우 모두! 죄의 결과로 재난이나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중풍 병자를 향해서는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질병이 다 죄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풍 병자의 경우는 죄가 그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깊은 내면 속에 숨겨져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면서, 죄가 얼마나 사람을 심각하게 망가트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주 활동무대셨던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이곳에 치유를 바라는 한 중풍 병자를 네 명의 친구들이 들것에 싣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예수님이 앉아계신 방의 지붕을 뚫고 병자의 침상에 줄을 매서 달아 내립니다. 그러자 주님은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주님은 이전에도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는 했어도, 죄 사함에 관해 말씀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추론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중풍 병자는 과거에 어떤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죄를 범했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이 죄로 인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신음하다가, 마침내 그는 육체적인 질병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자신 속에 있는 죄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진정한 문제는 중풍 병의 치유가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은 이 사실을 꿰뚫어 보셨고, 질병 자체를 치료하시기에 앞서 그 질병의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육체의 질병까지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숨겨진 죄의 문제를 보실 수 있는 예수님! 그리고, 문제를 보실 뿐만 아니라 그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이 죄 가운데 신음하고 있을 때, 오직 예수님만이 그 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중풍 병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문제로 양심이 괴롭고 심령이 평안치 못한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주저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애쓰지 마시고, 주님 앞에 나와 토설하십시오. “주님! 내가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고백하고 간구하면! 주님은 동일하게 “아무개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용서의 기쁨과 육체의 치유를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대신 죗값을 담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또한 이것을 전해야 합니다. 목사와 그리스도인이 전해야 하는 복음의 핵심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지적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기관들의 문제를 반면교사 삼아!
그런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즉각적으로 서기관들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마 9:3 →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마가복음에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막 2:7 →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는 이들의 생각은 사실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몰랐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세상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기에 서기관들의 마음에 걸림이 생겼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고, 세 기자가 동일하게 쓰고 있습니다. 주님은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비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놀라운 이적과 기사들을 폄하하면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성도가 목사에게 섭섭한 일이 있거나 뭔가 걸리는 것이 있으면, 그가 전하는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들으면서 ‘당신이나 잘하쇼!’ 이런 생각이 들고, 뭐 잘못된 것은 없나? 찾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은혜는커녕 자신의 심령만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손해 보는 것은 누구인가요? 바로 자신입니다. 객관적으로 전해지는 진리의 말씀에 아멘! 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그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인생을 지옥 구덩이에 던져 넣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쉽겠느냐?” 성도 여러분!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실은 둘 다 어렵습니다. 둘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경중을 따진다면, 죄 사함의 권세는! 인간에게 주어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병을 고치는 기적은!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통해서도 자주 일어났던 일입니다. 물론 제자들과 사도들이 일으킨 신유의 기적들도 자연인인 그들이 이뤄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둘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치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어려운 일이, 바로 죄 사함을 선언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서기관! 바로 너희들처럼 불신하는 자들에게, 내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공동 번역은 이 본문을 이렇게 좀 더 생생하게 번역했습니다. “이제 인자가(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어…”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한 생각으로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주님은 다시 분명한 말씀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마 9:6c →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러자 사지가 마비되어 꼼짝 못하던 중풍 병자가 벌떡 일어나서 누워왔던 들것을 메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실로 마음 속의 질병이었던 죄의 문제와, 육체의 질병이었던 중풍을 한꺼번에 치유 받아 다 건강해져서 돌아가는 축복된 인생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랜 세월 동안 죄책으로 인해 시달려 왔던 중풍 병자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각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치유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외적인 질병과 내적인 죄의 문제를 일시에 도말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언하신 주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신 주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죄로 인하여 마음의 병이나 혹은 육체의 질병을 앓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어떻게 해결될 수 있었는지? 나눠봅시다.
2. 주님의 용서의 선언에는 전제가 있고, 우리에게서 보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과 ‘고백’ 입니다. 이에 대해서 나눠봅시다.
3. 오늘날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또한 ‘죄’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