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욥 10:1∼12)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환난을 만나 부르짖는데도 침묵하고 계시다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예레미야 3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렘 33:3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그 무엇을 구하면 기꺼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1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런데 나의 현실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나 자신이 혼자 독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아!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이런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하나님과의 대화다.’라는 말이 무색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 것 같고,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이 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됩니까? 그 구체적인 방법! 몇 가지를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먼저, 내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내놓는 것입니다. 괜히 사람들을 들볶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받아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의심, 분노, 두려움, 슬픔, 혼란 그리고 모든 궁금증을 다 감당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렇게 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욥 10:1 →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네! 욥은 고통과 불평을 그냥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다 발설 했습니다.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음이 아프면 아픈 대로,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미우면 미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한나처럼 원통하면 원통한 대로,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 고통과 감정을 숨기고 가슴에 품고만 있으면, 오히려 병이 됩니다. 어떤 문제든지 다 하나님께 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7장에서도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욥 7:11 →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이것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습니다. 분하고 괴로워서,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내어놓음을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2절입니다. 욥 10:2 →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그렇습니다. 간단한 구절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혼자 탄식하거나, 사람에게 아무리 하소연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사람 앞에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절망도 느끼기 때문에 하나님께 하소연함이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 벌어진 상황이야 어찌하겠습니까?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세요. 죽을 지경인 걸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변함없이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는 겁니다. 어찌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하여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자만을 사랑하실까요? 반대로, 당신께 대드는 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하나님이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아픔과 원망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털어놓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일을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결같으신 분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상황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머릿속에 자꾸 떠올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을 아시며,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해서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그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치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결국 그분은 선하시며 사랑이 많은 분이시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 10:12 →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이 고백뿐이 아닙니다. 욥기서 전반을 보면, 이런 찬양의 고백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욥 37:5, 23, 42:2) “내 삶의 모든 구체적인 부분까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욥 23:10, 31:4) “내 삶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욥 23:14), 마침내 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욥 19:25) 고백을 쉼 없이 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굳게 신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멀게 느껴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를 지날 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굳세야 하고,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깊은 신앙의 단계로 이끌고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감정에 바탕을 둔 믿음은! 그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내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의 속성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든 못 느끼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편에 서 계십니다.
욥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23:12∼14 →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욥의 믿음은 고통 속에서도 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욥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실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껴지지만, 그런 자신의 감정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계속 신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깊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당하시는 동안, 하나님은 그 고난의 현장을 외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절망 속에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사실 예수님은! 스스로를 구원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침묵하고 계셨을까요? 왜 눈을 돌리셨을까요? 왜 예수님의 모진 고난과 고통을 외면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지옥 갈 우리 인생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함이요,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인하여 감사해야 되냐?’고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대체 감사할 일이 무엇이 있냐?’고 묻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감사할 일이 없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사건! 그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아멘.
욥은 이 모든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올려드려야 할 고백을, 욥은 이미 1장에서 했습니다. 욥 1:21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아멘.
사실 욥 자신도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깊어지면서, 자신의 고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1:10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할렐루야! 욥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욥의 감정, 욥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심정이고, 그런 형편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여전히 나를 붙드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그는 믿었던 것입니다.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험을 당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 삶을 드리며 ▸그분이 멀게 느껴질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눔과 묵상
1. 욥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서 그 감정을 하나님께 털어놓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혹은 사람에게 털어놓았던 경험과 결과를 나눠봅시다.
2. 하나님이 침묵하시더라도 그분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은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 나눠봅시다.
3.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내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욥 10:1∼12)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환난을 만나 부르짖는데도 침묵하고 계시다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예레미야 3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렘 33:3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그 무엇을 구하면 기꺼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1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런데 나의 현실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나 자신이 혼자 독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아!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이런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다.’ ‘하나님과의 대화다.’라는 말이 무색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신 것 같고,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이 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됩니까? 그 구체적인 방법! 몇 가지를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먼저, 내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내놓는 것입니다. 괜히 사람들을 들볶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받아줄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의심, 분노, 두려움, 슬픔, 혼란 그리고 모든 궁금증을 다 감당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렇게 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욥 10:1 →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네! 욥은 고통과 불평을 그냥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다 발설 했습니다.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음이 아프면 아픈 대로,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미우면 미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한나처럼 원통하면 원통한 대로,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 고통과 감정을 숨기고 가슴에 품고만 있으면, 오히려 병이 됩니다. 어떤 문제든지 다 하나님께 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7장에서도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욥 7:11 →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이것을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습니다. 분하고 괴로워서,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내어놓음을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2절입니다. 욥 10:2 →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그렇습니다. 간단한 구절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혼자 탄식하거나, 사람에게 아무리 하소연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사람 앞에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절망도 느끼기 때문에 하나님께 하소연함이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 벌어진 상황이야 어찌하겠습니까?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세요. 죽을 지경인 걸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변함없이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는 겁니다. 어찌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하여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자만을 사랑하실까요? 반대로, 당신께 대드는 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하나님이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아픔과 원망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털어놓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일을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결같으신 분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상황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머릿속에 자꾸 떠올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을 아시며,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해서 멋진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그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치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결국 그분은 선하시며 사랑이 많은 분이시라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욥 10:12 →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이 고백뿐이 아닙니다. 욥기서 전반을 보면, 이런 찬양의 고백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욥 37:5, 23, 42:2) “내 삶의 모든 구체적인 부분까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욥 23:10, 31:4) “내 삶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욥 23:14), 마침내 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욥 19:25) 고백을 쉼 없이 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굳게 신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멀게 느껴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를 지날 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굳세야 하고,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깊은 신앙의 단계로 이끌고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감정에 바탕을 둔 믿음은! 그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내 상황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의 속성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느끼든 못 느끼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편에 서 계십니다.
욥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23:12∼14 →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욥의 믿음은 고통 속에서도 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욥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실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껴지지만, 그런 자신의 감정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계속 신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깊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당하시는 동안, 하나님은 그 고난의 현장을 외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절망 속에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사실 예수님은! 스스로를 구원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침묵하고 계셨을까요? 왜 눈을 돌리셨을까요? 왜 예수님의 모진 고난과 고통을 외면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지옥 갈 우리 인생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함이요,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인하여 감사해야 되냐?’고 고민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대체 감사할 일이 무엇이 있냐?’고 묻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감사할 일이 없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사건! 그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아멘.
욥은 이 모든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올려드려야 할 고백을, 욥은 이미 1장에서 했습니다. 욥 1:21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아멘.
사실 욥 자신도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깊어지면서, 자신의 고백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1:10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할렐루야! 욥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욥의 감정, 욥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심정이고, 그런 형편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여전히 나를 붙드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그는 믿었던 것입니다.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험을 당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 삶을 드리며 ▸그분이 멀게 느껴질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눔과 묵상
1. 욥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서 그 감정을 하나님께 털어놓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혹은 사람에게 털어놓았던 경험과 결과를 나눠봅시다.
2. 하나님이 침묵하시더라도 그분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은 어느 정도 성숙했는지 나눠봅시다.
3.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내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합시다.